요즘 SNS에는 각종 ‘AS 성공비결’이 영웅담(?)처럼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내 돈 한 푼 안 들이고 새 휴대전화로 교환할 수 있는지, 중요한 약속에 값비싼 옷을 입고 나갈 수 있는지, 최고급 화장품을 써볼 수 있는지 등등이 버젓이 노하우로 소개된다. 공통점은 내 돈 안 들이고 뭔가를 이용하는 일이 ‘요령’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반드시 처음부터 ‘진상 짓’을 하는 것이 성공률을 높인다는 점도 묘한 공통사항이다.
최근 ‘블랙컨슈머(악덕 소비자)’가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악성을 뜻하는 블랙(black)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의 합성 신조어로 악성 민원을 고의적·상습적으로 제기하는 소비자를 의미한다. 내연녀에게 보낼 선물이 아내에게 잘못 배송되어 집안에 불화가 생겼다며 해당 업체를 고소하겠다고 나선 사람의 사례는 가치관의 혼란까지 일으킨다. 가정불화라는 ‘손실’을 남 탓으로 ‘충당’하려는 자기기만이다. 과연 불화의 근본 원인이 잘못 배송된 선물 탓이었을까. 
블랙컨슈머를 응대하고 보상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생산 및 유통 비용을 높이게 된다. 선의의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블랙컨슈머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우는소리를 하지만 막상 대응을 확실하게 하는 곳은 많지 않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블랙컨슈머가 암약하는 세상은 ‘소비자가 왕’임을 표방하는 마케팅 전쟁의 현장이다. 어떻게든 고객을 현혹해 하나라도 더 팔아야 하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과도한 서비스 경쟁은 사람들로 하여금 ‘소비자 권리’를 앞세워 이것저것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생태계를 조성했다. 제 값 주고 물건을 산 사람만 본의 아닌 피해자가 되는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블랙컨슈머로 인해 기업이 입는 피해보다 기업들의 횡포로 인해 소비자가 당하는 피해 사례가 훨씬 더 많다. 말도 안 되는 허접한 상품을 화려하게 포장하고 광고해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고 사라지는 사례, 유명 브랜드를 내건 대기업까지 가세해 함량 미달의 상품들을 쏟아내는 사례 등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의식과 불안을 안겨왔다.
손실 회피 심리 자극하는 환경이 소비자의 분노 키워
‘전망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합리적인 의사 결정으로 최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기보다 비합리적인 감정의 문제로 손해를 보는 선택을 할 때도 많은 존재다. 아울러 일반적으로 똑같은 물건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 잃었을 때의 고통이 더 크다고 느끼는 ‘손익 비대칭성’을 갖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익보다 손실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이런 손실 회피 심리를 건드리는 환경이 소비자들의 분노를 키웠다. 이들 일부는 정식으로 문제를 개선하고자 활동하는 ‘슈퍼컨슈머’로 진화하고 일부는 내 이익부터 챙기는 ‘블랙컨슈머’로 진화했다.
블랙컨슈머가 사회적 손실을 유발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들을 처벌한다 한들 문제의 본질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버릇없는 아이의 배후에는 오냐오냐하는 어른이 있다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요구까지 받아주면서 달래고 꼬드겨 물건을 팔아온 마케팅 관행에 대한 대가가 바로 블랙컨슈머다. 고로 악덕 생산자 및 유통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 소비자에 대한 구제책이 더욱 강화되어야 블랙컨슈머라는 괴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뢰’다. 손실 회피를 위해 내 회계장부의 이익만 보고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은 사회적 비용을 증가시키고 가장 중요한 자산인 신뢰를 무너뜨린다. 살다 보면 생길 수 있는 소소한 손실들을 서로 일정 정도는 감수하는 사회와 내 손실을 남에게만 전가해 보상받으려는 사회. 어느 곳이 진짜 이익을 주는 사회일지 생각해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