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생활경제보건소 20] 결제가 편해져서 사기 치기에도 편리해진 세상
인터넷을 통한 결제가 편리해졌다는 것은 남 또한 내 지갑 열기가 편리해졌음을 뜻한다.
그들의 사기는 결제 방식의 진화와 함께 진화했다.
“[법원] 등기 발송하였으나 부재중으로 전달 불가하였습니다. 간편 조회 http://dwz.im/mad23”
이런 메시지가 왔을 때 A씨는 한참 거래처와 통화 중이었다. ‘법원? 뭐지?’ 무심코 링크를 눌러봤지만 이상한 안내문으로 연결될 뿐 법원 등기와 관련된 내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연결에 뭔가 문제가 있나 싶어 서너 차례 반복하다가 바쁜 업무 때문에 곧 잊었다.
다음 달에 휴대전화 이용대금 명세서를 받아본 A씨는 대경실색했다. 휴대전화 요금이 40만원 가까이 청구되어 있는 게 아닌가. 웬일인가 싶어 자세히 명세서를 들여다보니 소액결제란에 29만9400원이라는 금액이 찍혀 있었다. ‘아니 내가 뭘 결제했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별다르게 생각나는 것이 없어 소액결제 세부 내역 조회를 해보니 ‘RiotGamesCoin’이라는 이름으로 4만9900원씩 총 6회에 걸쳐 빠져나가 있었다. 고객센터로 곧바로 전화해서 문의해보니 “고객님, 스미싱 피해를 입으신 것 같습니다. 피해 입은 내용을 화면 캡처하거나 출력하셔서 가까운 경찰서를 방문해 사건·사고 사실 확인서를 발급받으시고요, 이것을 저희 고객센터로 보내주시거나 대리점을 통해 제출하시면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이스피싱에 스미싱(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휴대전화 해킹 기법)·파밍(PC를 특정 악성코드에 감염시켜 가짜 사이트로 유도해 금융거래 정보를 알아내는 것) 등 신종 사기가 극성을 부린다더니 딱 그거였다. 갈수록 교묘한 방법으로 내 지갑을 노리는 그들은 사실 ‘결제 방법의 진화’와 함께 진화한다고 볼 수 있다. 무언가 물건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결제하는 과정은 상당히 편리하게 발전해왔다. 지갑 속에 현금을 두둑이 넣고 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교통카드 기능을 갖춘 신용카드 한 장만 들고 다니면 도시 생활에는 큰 불편이 없을 정도로 결제 시스템이 발달했다.
무엇보다 현금 결제 자체가 쉽지 않은 인터넷쇼핑이나 홈쇼핑 분야에서 결제 수단의 편리성은 매출 성장과 직결되는 문제다. 갖가지 다양한 무이자 할부 혜택을 갖춘 신용카드는 심지어 지금 당장 돈이 없어도 사고 싶은 물건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한다. 향후 모바일 결제는 지갑조차 필요 없는 세상을 열어주리라 예상된다.
결제 과정 간편할수록 충동 소비 커져
결제 과정이 간편해질수록 충동 소비는 커진다. 충동 소비는 불만족과 후회를 부르고, 돈은 돈대로 써놓고 만족도 얻지 못하는 ‘불행한 소비’가 더욱 증가될 가능성이 크다. 현금을 쓰게 되면 본능적으로 ‘돈쓰기가 아까워서’라도 한두 번 더 망설이게 된다. 그러나 편리한 결제 시스템은 ‘망설임’의 시간을 없애고 돈 쓰는 ‘감’을 떨어뜨려 더 많이 소비해야 만족감이 채워지게 되는 효과를 발휘한다. 한정된 돈, 나의 ‘피 같은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는 모르고 그저 ‘결제수단으로서의 돈’이 늘 부족하게 느껴질 뿐이다.
결제가 편리해졌다는 것은 내가 내 지갑 열기가 편리해졌음과 동시에 남 또한 내 지갑 열기가 편리해졌다는 것과도 같다. 보안이 강화될수록 결제 과정은 복잡해지고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비밀번호를 누르고 보안카드도 입력해야 하다 보니, 나이 든 분일수록 내 돈 찾아 쓰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고 있다.
보이스피싱으로부터 안전한 방법은 뭘까? 통장 잔액이 없으면 된다. 스미싱으로부터 안전한 방법은? 지금 당장 ‘소액결제’ 기능을 아예 차단해버리면 된다. 인터넷뱅킹 사기로부터 안전한 방법은? 불편하더라도 은행 거래를 본인이 직접 가서 하면 된다. 그런데 과연 가능할까? 우리가 사는 사회 환경이 이미 편리한 결제 시스템에 맞춰져 있음을 이러한 ‘불편함’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결제 방식은 생각보다 내 개인적인 취향과 선택이 아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