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생활경제보건소 23] '방한전쟁' 이제 그만~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이지만, 사실 효과는 그저 그렇다.
겨울은 어느 정도 춥게 지내는 것이 순리 아닐까.
[326호] 2013년 12월 09일 (월) 10:42:01 박미정 (여성이만드는일과미래 생활경제상담센터장) webmaster@sisain.co.kr
부쩍 추워졌다. 겨울이니 춥기 마련인데도 ‘몇십 년 만의 한파’라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 마치 연례행사가 되었다. 지난해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을 때 A씨는 값비싼 ‘방한’ 전쟁을 치른 아픈 기억이 있다. 느닷없이 너무 추워지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예산에도 없던 온풍기를 덥석 구매했다. 문제는 온풍기를 돌리니 실내가 너무 건조해지는 것이었다. 추운데 자주 환기를 하자니 에너지 낭비 같다는 생각도 들고, 빨래 널어두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건조하니 아이들 감기도 더 심해지는 것 같고 해서 가습기도 한 대 샀다. 가습기를 돌리니 결로 현상이 심해졌다. 결로가 심해지면 자칫 실내 곰팡이가 창궐할 우려가 있다면서, 자주 환기를 시켜줘야 한다는 말에 A씨는 기운이 빠졌다.
분명히 온풍기 살 때 ‘추가 전기료 월 5000원으로 포근한 겨울’이라는 문구를 보았는데, 전기요금은 5만원 이상이 추가로 청구되었다. 전기요금이 누진제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가뜩이나 난방비도 비싸져서 부담이 큰 상황이라, 전기도 아낄 겸 온풍기는 웬만하면 틀지 않기로 했다. 가습기도 생각보다 청소 관리가 번거로워서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곧 애물단지가 되어 창고방 한구석을 차지하고서 집을 좁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도 전열기기 시장은 2010년부터 매년 10% 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여름철 전유물이었던 전력피크를 갈아치우기 시작한 것도 2009~2010년 겨울부터다. 피크전력 사용량은 매년 겨울 400만㎾씩 늘어나는 추세다. 한겨울의 전력대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비용을 들인 만큼 삶이 나아지기라도 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다.
“창문 유리에 뽁뽁이를 붙이고, 외벽 창틀에 문풍지를 붙였더니 제법 냉기가 많이 줄더라고요. 가족 모두 기모 소재의 실내복을 사서 입고, 보리차를 자주 끓여 마셔요. 저희가 침대 생활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전기장판을 써야 했는데, 전기장판 치우고 그냥 바닥에 이불을 펴고 가족이 다 같이 자니까 생각보다 따뜻하던데요.”
과도한 ‘편리’에 따른 고정비용
잠을 잘 때 체온이 평상시보다 낮아지는데 이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정보를 듣고 전기장판부터 치워버렸다는 A씨. 너무 뜨끈하게 자는 것이 오히려 체온 조절 능력을 떨어뜨려 감기나 각종 순환장애를 일으킬 우려가 높다는 말에 괜한 자괴감도 밀려왔다. 캠핑 가서 침낭만 있으면 자기 체온만으로도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뒤 자신이 ‘추위’에 약한 체질이라는 ‘믿음’부터 없앴다. 건강에 좋은 것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들었다.
돈은 참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더운 여름날도 시원하게, 추운 겨울날도 따스하게. 그런데 덥기 마련인 여름은 어느 정도 덥게, 춥기 마련인 겨울은 어느 정도 춥게 지내는 것이 순리 아닐까. 순리를 거스르는 과도한 ‘편리’와 ‘안락’의 추구는 삶의 비용을 높인다. ‘안락’에 적응되면 그 비용도 고정비용화되어 삶의 문턱을 높일 뿐 아니라, 겨울에 춥기 마련인 ‘순리’가 불편한 것이 되어 갈수록 추위에 취약해지는 묘한 육체적 퇴행(?)을 겪게 된다. 퇴행에는 또다시 보양의 비용이 들어가는 이 요사스러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A씨처럼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면역력을 믿고 최대한 활용하여 강화시키면 된다. 다행인지 여기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